❖ 한 끼니의 힘 — 강냉이에서 시작된 말이 우리 삶이 되기까지
어릴 적, 우리 집에는 작은 쌀독이 있었다.
넉넉한 집이 아니라 항상 바닥이 보이곤 했지만,
어머니는 그 속에서 동냥하는 걸인들이 오면 줄 쌀 한 줌을 따로 떼어 모아 두셨다.
“이건 우리가 먹을 것과 따로야.
누군가는 이 한 줌이 오늘 하루를 버티게 해주거든.”
어머니는 아버지께 별도로 상을 차려 주셨다.
식사 때가 되어 집 앞에 걸인이 나타나면
그 아버지는 마루 끝에 먹고 있던 상에 겸상을 하셨다.
십시일반(十匙一飯)이라 했던가?
가족 모두가 한 숟가락씩 모으면 동냥하는 걸인의 밥이 많았다.
자식들은 그 모습이 어찌나 낯설고도 따뜻해 보이던지
그저 말없이 바라보기만 했다.
옛사람들이 이웃을 만나면
가장 먼저 건네던 인사는 늘 이랬다.
“조반(早飯) 자셨습니까?”
이 인사말은 배려이자 안부였고,
동시에 생명을 확인하는 말이기도 했다.
한 끼니는 곧 생명이고 사랑이었기 때문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속담 역시
굶은 삶 위에 아름다운 경치는 의미가 없다는
우리 민족의 오래된 깨달음이다.
이처럼 ‘끼니’란 말은 한국인의 마음 속 가장 깊은 곳에 내려앉은 말이다.
그런데 이 소리 하나가 품고 있는 뿌리는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멀고, 깊다.
1. 곡식 알에서 생명을 뜻하게 된 말 — kiNa · kaNa
고대 인도-아리아 지역에는
강냉이를 뜻하는 kiNa,
낱알·씨앗을 뜻하는 kaNa라는 말이 있었다.
끼니(끄니)라는 말을 지금 우리가 쓰고 있다는 것은
놀랍게도 그 말의 주인공들이 우리 선조 동이족(東夷族)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kiNa [끼나] → 강냉이(옥수수, corn)
- kaNa [깐나, 까나] → 곡식의 알, 낱알, 씨(seed)
그들에게 곡식 알 kaNa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내게 해주는 생명의 최소 단위”였다.
그래서 그 말은 자연스럽게 이런 의미로 확장되었다.
곡식의 알 → 생명의 단위 → 하루를 이어 주는 근본
그리고 그 의미의 흐름은
오늘 우리가 쓰는 ‘끼니(끄니)’와 정확히 포개진다.
한 번의 밥 = 하루를 버티게 하는 힘.
kiNa : 끼나 → 끼내 → 끼니
kaNa : 깐나 → 깐내 → 깡내 + 'ㅇ' → 강냉이 (KaNa는 강냉이를 포함한 낱알 곡식들의 총칭으로 보아야 할 듯)*
2. 산악 지대에서 강냉이는 곧 삶이었다
왜 하필 강냉이였을까?
그것은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땅이 말해준다.
옥수수(강냉이)는
고산·건조·바람 많은 지역에서도 잘 자라며
말리면 겨울 내내 먹을 수 있었다.
히말라야·파미르·티벳·신장 일대의 민족들은
그래서 강냉이를 가장 귀한 주식으로 삼았다.
한국어 ‘끼니’의 뿌리가
강냉이를 뜻하는 kiNa, kaNa에서 왔다는 사실은,
우리 조상들의 삶이 평야가 아니라 산에서 시작되었다는 증거
이기도 하다.
3. 판찰라(Pañcāla)–쿠루(Kuru) 지역,
그리고 ‘산꼴마을 사람들’로 이어진 변모의 역사
동이계(東夷系)로 분류되는 부족들이 실제로 거주했던 핵심 지역 가운데 하나가
판찰라(Pañcāla)와 쿠루(Kuru) 왕국이다.
■ 판찰라–쿠루 지역은 어디인가?
- 현재의 북인도 히말라야 하부
- 갠지스 상류와 야무나 강 사이의 넓은 고원·산록 지대
- 고대 인도 문헌(《마하바라타》 등)에 반복 등장
- 험준한 지형, 고원성 기후, 농경과 유목이 공존하던 곳
이 지역은 평야 문명보다는
산지·구릉·계곡을 따라 형성된 산촌 공동체가 중심이었다.
곡식 재배도 쌀보다는 옥수수·기장·수수 같은 거친 곡물 중심이었다.
바로 이 환경이
kaNa(곡식 알)–kiNa(강냉이)라는 언어적 토대를 만들었다.
■ 꾸루족이 ‘산꼴마을 사람들’이 되어간 과정
꾸루족은 처음에는 큰 부족 연맹체였고
그들의 중심지는 판찰라–꾸루 대지(臺地)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며 이들은
산맥을 넘고 고원을 건너
동쪽·북동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 이동 경로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고 본다.
- 판찰라–쿠루 왕국
→ 히말라야 북부 산록
→ 파미르 고원
→ 천산 남록
→ 타클라마칸 주변
→ 돈황–고비
→ 만주–요동
→ 한반도 산악 지대
이 긴 여정에서 꾸루족은 점점
‘큰 부족’에서 ‘산촌, 산골 마을 공동체’의 형태로 바뀌어 갔다.
심지어 "꾸루(Kuru)"라는 이름마저
후대에 구루·꾸루 → 꼴·골(谷, 마을)을 중심으로 사는 산꼴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로 재해석되어
생활 형태와 맞닿으며 의미가 변했다.
즉,
■ 꾸루(Kuru) = 고원·산지에 생활한 민족
→ 산골바람 속에서 정착한 ‘산꼴마을 사람들’
이 변화 과정에서 생존의 기초는 언제나 같았다.
kaNa(낱알), kiNa(강냉이)였다.
그래서 그들의 언어가 변하고, 풍속이 달라지고,
마침내 한반도에 들어와 ‘동이’의 한 갈래가 되었을 때도
그들의 생계 언어만큼은 꺼지지 않았다.
그 말의 흔적이 오늘
우리가 매일 쓰는 ‘끼니’ 속에 남아 있는 것이다.
4. 동이족의 발걸음과 함께 이동한 말
동이족의 이동 경로를 따라가면
그 길은 한반도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 모든 지역은
산악 지대·고원 지대이며,
공통적으로 옥수수를 주식으로 삼는 문화권이다.
그 중심에 중천축국(中天竺國)이 있었고
그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바로 꾸루족(Kuru)이었다.
그들이 남긴 언어의 잔흔이
수천 년 뒤 한반도에 도착해
조용히 우리의 일상어 속에 자리한 것이
바로 ‘끼니’라는 말이다.
6. “끼니 묵었냐?” — 입의 언어, 생명의 언어
한국의 여러 지역(경상, 전라)에서는
지금도 “먹다”를 ‘묵다’라고 부른다.
이 말의 뿌리에는 산스크리트 mukha(묵하),
즉 “입·얼굴”을 뜻하는 말이 있다.
mukha → 묵하 → 묵어 → 묵다(먹다)
즉,
입(mukha)이라는 말이
‘입에 넣다 → 먹다’라는 의미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옛날부터 이렇게 물었다.
“끼니 묵었냐?”
그 말의 구조를 풀어보면,
- kaNa(곡식의 알)
- mukha(입)
즉,
곡식 알을 입에 넣어 하루를 살아가는 행위.
말 한마디 속에 생존의 원리가 그대로 담겨 있는 것이다.
7. 옛사람들이 남긴 삶의 철학
우리 어른들은 종종 이런 말을 하셨다.
“그 끄니 못 챙겨 먹으면 영원히 못 먹는다.”
이 말은 단순히 끼니 걱정을 넘어
사람에게는 타고난 몫(share)이 있고
그 몫을 찾아 살아가야 한다는
인생의 법칙을 담고 있다.
끼니는
배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사람의 운명을 지탱하는 최소 단위였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기 먹을 것보다 더 귀하게
거지에게 줄 쌀 한 줌을 모으셨고,
아버지는
낯선 이에게도 상을 내어주며
“끼니는 목숨이니 같이 먹자”고 말없이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그 모든 삶의 장면들이
결국 ‘끼니’라는 말 하나 속에
깊은 울림으로 녹아 있는 것이다.
❖ 정리 — 언어·역사·정서가 만나는 자리
- ‘끼니’는 강냉이(kiNa = kaNa)를 뜻하던 말에서 출발했다.
- 그 말은 고산·고원 문화에서 살아온 동이족·꾸루족의 생존 방식을 반영한다.
- ‘먹다(묵다)’는 mukha(입)에서 왔다.
- 그래서 ‘끼니를 묵는다’는 말은
“곡식 알을 입에 넣어 목숨을 잇는다”는
가장 원초적 생존을 표현한 말이다. - 그리고 이 말은
가난했던 시절 서로를 살리던 우리 부모 세대의 따뜻함과 사랑으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을 생각하면,
우리가 오늘 서로에게 묻는
“끼니 드셨어요?”
라는 인사는
단순한 식사 확인이 아니라,
“당신의 하루를, 당신의 생명을,
내가 소중히 여깁니다.”
라는 가장 오래된 한국인의 마음말이다.


인도 가장 북쪽 히말라야 산맥 아래 지역, 종종 영원한 행복의 나라로 묘사됨



●스스로 "나"를 사랑하고, 우리말과 역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달해 주십시오.
위 내용은 인터넷 주소창과 카톡에 아래와 같이 바로 입력하여 볼 수 있습니다.
www.다일라.한국/39
www.다일라.한국/2 ☆ 다 깨어 일어나라!!! 다일라!!! ☆ --대한민국 새로운 구호 제창
☆ 다 깨어 일어나라!!! 다일라!!! ☆ --대한민국 새로운 구호 제창
대한민국 새로운 구호 제창 다일라!!! 다 깨어 일어나라! 화이팅은 “투지(鬪志)”“전의(戰意)”를 뜻하는 영미권의 “파이팅 스피리트” (Fighting Spirit)를 사용하면서 생겨났다는 설(說)과 일본
www.xn--2j1b40gc5q.xn--3e0b707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