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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우다 : 자식의 짝을 맺어 결혼시키다

김석훈 | 우리말 뿌리연구가, 『우리말 범어사전』 편저자

           | 역사계보  족보연구가, 『천제환국조선인류역사계보  두루마리 편

 

‘예우다’와 ‘예우나’ — 결혼을 묶고, 인연을 잇는 오래된 말의 깊이

가을이 깊어지면 사람의 마음은 어느덧 결실을 떠올린다. 들녘의 곡식이 여물 듯, 인간의 인연도 어느 순간 결실의 때를 맞는다. 그래서인지 요즘 같은 계절에는 새신랑·새신부 소식이 유난히 자주 들린다. 이런 때면 자식을 둔 부모들은 한결같이 말하곤 한다.

 

“우리 딸은 은제(언제) 예울까?”
“예와야 쓸 것인디,.... 어쩔랑가 몰라.”

 

여기서 말하는 ‘예우다’는 우리가 현대 국어사전에서 흔히 보는 ‘예로써 대접하다’의 의미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예우다”는 ‘자식의 짝을 맺어 결혼시키다’,
부모가 두 생명을 서로 묶어주는 행위를 가리켰다.
이 말의 뿌리를 더 깊이 더듬어 올라가 보면 놀라운 사실이 드러난다.
그 중심에는 범어(산스크리트)의 yaut, yautaka, yauna라는 어근이 있다.

 

1. ‘예우다’의 뿌리 — yaut: 묶다, 잇다, 결속시키다

산스크리트 yaut는 기본적으로
“to join or fasten together”,
즉 서로를 묶다, 결합시키다라는 의미를 갖는다.

사람이 사람과 결혼을 통해 이어지는 것처럼,
두 존재를 하나로 연결하는 가장 본질적 행위를 뜻한다.
이 어근이 우리말에서 야우다 → 얘우다 → 예우다로 변해 온 것이다.

이와 관련된 **yautaka(야우타까)**는 의미가 더 넓어진다.

  • 독점적으로 어떤 사람에게 속하는 것
  • 결혼할 때 주어지는 재산
  • 신부에게 주는 선물
  • 신랑 또는 신부 측에서 마련하는 혼례용 재물
  • 즉, ‘혼례로 인해 주어지는 재물’, 곧 '함(函)'의 성질과 정확히 일치

우리의 전통에서 신랑이 보내는 ‘함’—채단과 혼서지를 담아 신부에게 전하던 네모진 상자—는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 **혼인이 성립됨을 상징하는 ‘결속의 징표물’**이었다.
이는 yautaka가 말하는 혼례 선물과 거의 같은 문화층에 놓여 있다.

따라서 “예우다”는 단순한 결혼이 아니라
두 생명을 묶어 결속시키는 행위 전체,
그리고 거기에 수반되는 재물·증표·혼재까지 함께 품는 말이다.

 

2. ‘예우나’ — yauna: 혼인으로 연결된 모든 관계

‘예우다’가 결혼을 성립시키는 동작이라면,
‘예우나(여우나)’는 결혼으로 생겨난 관계 그 자체를 뜻한다.

범어 yauna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폭넓다.

  • 자궁·출생과 관련된 것
  • 결혼으로 인해 맺어진 관계
  • 사돈 관계, 혼속 관계
  • 부부의 연대, 혼인 동맹
  • 잉태와 관련된 의식
  • 결혼의 의무

즉, 혼인으로 인해 두 집안이 서로를 ‘잇는’ 모든 관계—
사돈, 인척, 부부의 연대, 잉태와 출산까지 이르는 삶의 연속—을
한데 묶어서 설명하는 말이다.

‘예우나’는 단순히 “결혼한” 정도가 아니라
혼인으로 인해 서로 연결된 삶의 망 전체,
가족·가문·출산·후손의 지속성까지 아우르는 말이다.

 

3. ‘함(函)’의 의미가 범어와 만나는 지점

국어사전은 함을

  1. 네모진 통
  2. 혼인 때 신랑이 보내는 채단·혼서지 상자
    로 설명한다.

그러나 yautaka의 의미—
혼인 선물, 지참금, 결혼에서 주어지는 재산, 혼재물—을 알고 보면,

우리 전통 혼례의 ‘함’은
단순한 나무 상자가 아니라 ‘인연을 확정짓는 혼결(婚結)의 물적 표식’이었다.
두 집안이 사돈으로 이어지는 결합 행위가 함을 통해 공적으로 선언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말·전통·범어 어원이 하나의 축으로 맞물릴 때,
“예우다”와 “예우나”는 그저 결혼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결속·인연·가계의 계승을 잇는 깊은 문화적 언어임을 알 수 있다.

 

 4. ‘엮다(yukta)’와의 계보

참조어로 제시된 yukta(엮다) 역시
“묶다, 연결하다”라는 거대한 어원군에 속한다.
결혼은 곧 ‘엮음’이며,
예우다·예우나는 그 엮음으로 생겨나는 문화적 관계를 표현한다.

 

 맺음말 — 잇고, 묶고, 이어주는 말

오늘날 우리는 ‘예우다’ 하면 흔히 ‘대접하다’를 떠올린다.
그러나 우리의 옛말은 훨씬 더 깊고 넓은 세계를 담고 있었다.

  • 두 생명을 묶고
  • 두 가문을 잇고
  • 인연의 물꼬를 열고
  • 새 생명의 길을 준비하는 일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말이 예우다(ye-uda)이며,
그 결속의 결과로 주어지는 혼속 관계가 예우나(ye-una)였다.

언어는 삶을 비춘다.
‘예우다’라는 말의 깊은 뿌리를 다시 들여다보면
우리 조상들이 결혼을 단순한 행사가 아니라
인연을 완성하는 ‘결(結)’의 행위,
삶과 삶을 ‘묶는 큰 일’로 보았음을 깨닫게 된다.

 

 

우리말 범어사전 527쪽

 

우리말 범어사전 528쪽
우리말 범어사전 528쪽

   

우리말 범어사전 2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