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을 건너는 말들의 계보 — ‘배따라기’에서 시작된 우리말 어원의 여정
노를 젓는 뱃사공의 느린 호흡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이 언어를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문득 드러난다. 김동인의 소설 <배따라기> 속 뱃사공은 단순히 강 건너 사람을 실어나르는 존재가 아니라, 삶의 경계를 건너게 하는 안내자였다. 그 ‘배따라기’라는 말 자체가 이미 그것을 증언한다.
산스크리트 tarika / tarikin—“건너게 하는 자(배따라기), 나룻배꾼”—가 바로 그 뿌리다.
■ 배는 곧 '다리'였다
고대 인류에게 배(tari)는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었다. tari는 “배”이면서 동시에 “길”, “통로”, “건너감”을 뜻했다. 우리가 오늘 ‘다리(橋)’라 부르는 구조물의 기능을 고대인은 배가 대신했다.
그래서 한국어의 **“다리”, “배를 타다”, “길을 타다”, “천이 타다”, “불이 타다”**가 모두 산스크리트 tara / tari에서 하나의 의미망으로 연결된다.
tara는 “가로지름, 건넘, 초월”, 그리고 “불”, “뗏목”, “옷자락”, “때림”까지 품는다.
경계를 넘어가게 하는 모든 행위가 한 어원 속에서 숨쉬고 있었던 것이다.
■ 보따리–boat의 기원은 ‘pota’
보자기와 보따리의 ‘보’ 역시 단순한 방언이 아니다. 산스크리트 pota는 “천, 그릇, 집의 기초, 합쳐 묶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한국어 보따리, 그리고 영어 boat가 갈라져 나왔다는 해석은 놀라울 만큼 구조적으로 자연스럽다.
‘무엇인가를 담아 떠받쳐 운반하는 틀’이라는 개념이 천에서 배로 확장된 셈이다.
* 영어 bottom(바텀: (밑)바닥)이 곧 foundation (기초)를 나타내며 pota와 한 뿌리이다.
■ 바래다·바지게·발 — “나르는 바(바ㅎ, vah)”
누군가를 집까지 ‘바래다 준다’는 말의 ‘바’ 또한 운반의 어원을 품는다.
산스크리트 vah는 “나르다, 실어 나르다, 전달하다”이다.
그러므로 바지게(발+지게)도 결국 ‘짐을 지고 나르는 도구’라는 뜻의 직계 후손이다.
육지에서 나르면 발·지게가 되고, 물 위에서 나르면 배가 된다.
그래서 바 → 배 (ㅏ→ㅐ)라는 음운 이동도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 배와 신발이 하나였던 시대
veDaa(베다), veTa(베따), veTii(베띠)는 “샌들”이자 “배”, “뗏목”, “부표”를 뜻한다.
신발처럼 인간의 몸을 떠받쳐 이동을 돕는 것이 물 위에서는 배가 된 것이다.
육지와 물이라는 환경만 달라졌을 뿐, 인간이 만든 이동의 원리는 ‘발판을 만들어 떠받친다’는 하나였다.
■ 노 젓는 행위, nau–nu의 오래된 울림
동국정운의 노(櫓), 산스크리트 nau / nu는 모두 “배, 선박, 조각배”를 뜻한다.
노를 젓는 행위가 언어 안에서 ‘배’ 자체를 상징했음을 보여준다.
뱃사공의 호흡, 물살을 가르는 소리까지 언어 속에 응축된 것이다.
■ 배따라기의 철학 — 인간은 늘 건너가는 존재
Tarika(배따라기)의 본뜻은 “건너게 하는 자”.
강을 건너는 행위는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존재의 전환’이다.
그래서 김동인의 질문은 결국 언어의 근원적 진실과 맞닿는다.
“나그네는 저 강을 건너 어디로 가는가?”
그는 건너감을 향해 간다. 넘어서기 위해, 삶의 또 다른 편으로 가기 위해.
인류는 자신의 보따리를 싼 뒤, 다리를 만들고, 배를 타고, 길을 타고, 불이 타오르는 방향으로 늘 움직여 왔다.
그 모든 단어가 하나의 어원적 중심, 즉 ‘경계를 넘어 옮기는 행위’를 둘러싸고 형성되었다.
언어의 깊은 곳에서, 노 젓는 소리가 아직도 희미하게 들린다.
그건 인간이 수만 년 동안 건너온 삶의 물결이 남긴 울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