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훈 | 우리말 뿌리연구가, 『우리말 범어사전』 편저자
| 역사계보 족보연구가, 『천제환국조선인류역사계보』 편찬
❄ 초겨울 찬 공기에 떠오르는 말, ‘나그네’
초겨울 바람은 언제나 한 인간의 길을 생각하게 한다.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고, 들판이 텅 비어가는 그 쓸쓸한 공기 속에서 우리는 문득 깨닫는다. 인생길은 결국 누구나 나그네라는 것을.
그런데 우리가 너무 익숙하게 써 온 이 말 ‘나그네’는 단순히 길을 떠도는 사람을 뜻하는 정도가 아니다. 그 어원을 따라가 보면 더 놀라운 의미가 드러난다.
1. 나그네의 깊은 뿌리 — ‘발가벗은 채 깨어난 존재’
고대 문헌—동국정운, 新增類合, 다양한 인도·타밀·우르두·산스끄리뜨 사전—은 공통적으로 ‘나그네’를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 nagna / nagna / nakkan / nāgā
→ 발가벗은 탁발승, 나체로 떠도는 수행자, 황량함 속의 시인을 뜻함.
즉, ‘나그네’는 단순한 여행자가 아니라
옷을 벗어 던지고, 세속적 장식까지 내려놓은 존재,
가난하지만 깨어 있는 사람을 의미했다.
이를 통해 우리는 다음의 음운 변화를 확인할 수 있다.
나그나 → 나그내 → 나그네
그리고 흥미롭게도,
영어 naked(벌거벗은) 역시 같은 뿌리에서 나왔다.
우리말과 인도·유라시아 언어들이 이어진 고대의 깊은 흔적이다.
2. 나그네는 ‘영혼의 주인’이라는 뜻을 가진다
우리 옛말에 ‘께테나(깨댕이)’, 즉 영혼이 깃든 집의 주인이라는 표현이 있다.
겉의 옷도, 지위도, 재산도 벗어버리면 남는 한 가지—
바로 ‘나’라는 영혼의 길을 스스로 걷는 존재,
그것이 나그네다.
나그네는 외롭고 황량하지만, 신비하게도 가장 자유롭다.
세상에 흔들리지 않는 자, 오직 길 위에서 깨어나는 자.
3. 초겨울은 나그네를 재촉한다
초겨울 찬 공기가 볼을 스치면
어느덧 우리도 삶의 본질을 바라보게 된다.
쓸쓸한 들판처럼,
한 해 동안 쌓였던 허식과 욕망도 바람에 씻겨나간다.
바로 그때 우리는 자신에게 묻는다.
“나는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옷을 벗은 탁발승처럼,
맨몸으로 길을 걷는 나그네가 된다.
4. 다일라—나그네에게 주는 새벽의 외침
모든 것을 벗고 길을 걷는 나그네에게 필요한 말은 하나다.
“다일라!
다 깨어 일어나라!”
세속의 잠에서 깨고,
영혼의 주인으로 다시 서라는 말.
기미독립선언서가 민족에게 깨어남을 명령했다면,
다일라는 개개인의 영혼에게 깨어남을 명령하는 말이다.
❄ 결론
초겨울 바람은 우리를 다시 나그네로 만든다.
가진 것을 내려놓고, 본래의 나로 돌아오라는 신호다.
세계 어느 언어와도 깊게 연결된 이 오래된 우리말 나그네는
단순한 유랑자가 아니라,
영혼의 집을 찾아가는 존재를 뜻했다.
그러니 오늘도 한 번 외쳐보자.
다일라!
나그네들이여, 다 깨어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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