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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헤 있느냐?” ― 우리말 속에 살아 있는 범어(梵語)의 뿌리

다일라 2025. 10. 20. 00:19

“게헤 있느냐?” ― 우리말 속에 살아 있는 범어(梵語)의 뿌리

김석훈 ㅣ 우리말 뿌리연구가, 『우리말 범어사전』 편저자

사극을 보면 길가는 선비가 어느 집 대문 앞에서
“게헤 있느냐! 게헤 없느냐!” 하고 외치는 장면이 있다.
이 낯익은 말 속에는 단순한 ‘옛 표현’을 넘어
수천 년 전 인류 언어의 흔적과 철학이 숨어 있다.

 

1. ‘게헤(gehe)’ ― 집(家), 몸, 그리고 삶의 근원

‘게헤’는 산스크리트어 **geha(게하)**에서 온 말이다.
이 단어는 **‘집’, ‘거처’, ‘몸의 거주지’**를 뜻하며,
단순히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아니라
영혼이 머무는 그릇, 삶의 중심이라는 철학적 의미를 품고 있다.

 geha = house, dwelling, habitation, family life
즉 “게헤 있느냐”는 단순한 “집에 있느냐?”가 아니라
“당신의 삶은 평안한가?”, “당신의 터전은 무사한가?”라는 인사이자
삶의 안부를 묻는 예의의 언어였다.

 

2. 게헤 → 계집 ― ‘집 안에 있는 사람’

또 하나 주목할 흐름은 ‘게헤=(집)’ → ‘계집’이다.
‘계집’은 원래 “게헤(집)에 있는 사람”,
즉 **‘집을 지키는 이’, ‘가정을 돌보는 아내’**를 뜻했다.

‘계집’이라는 단어가 후대에 비하의 의미로 쓰이기 전,
그 본래 뜻은 ‘집의 중심에 있는 사람’ 조선시대만 하더라도
곧 ‘안살림을 맡은 존귀한 존재’였다.

즉, gehe(집) → geh-jiv(집 안 사람) → 계집(아내, 부인)

이라는 음운·의미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3. 게헤미 → 게아미 개미 ― ‘집단의 존재’

‘게하(게헤)’는 단순히 집을 뜻할 뿐 아니라
집을 짓고 사는 존재를 나타내는 말로도 확장되었다.
바로 ‘게헤미’ → ‘게아미’ → ‘개미’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채 변화해 왔다.

* geha 자체가 개미의 일종인데 아래처럼 같은 말(ama)이 반복되었거나

 동이족(東夷族) 우리 선조들이 미물(微物)이므로 (微)를 추가했을 수도 있다.

* geha = 집, dwelling

* gehe + ama (at home, in the house) → 집을 짓고 사는 존재

'게(헤)아마' →  '게아매' → 게아미 → 게미 (微) → 개미

* gehe+(微) = 게헤미

 

이 흐름 속에서 ‘개미’는 집단으로 모여 사는 (작은) 존재,
즉 ‘집을 짓는 개미 → (蟻)’를 뜻하게 되었고,
‘개미’라는 말로 정착했다.

결국 ‘개미’는 집을 짓고 사는 작은 존재(geha + ama)로,

‘집의 생명’을 상징하는 말이었다.

 

4. ‘게으르다’ ― 집(gehe) + 붙어 있다(aalag)

‘게으르다’의 뿌리 또한 이와 연결된다.
범어의 **gehe(집)**와 **aalag(붙다, 매달리다)**가 합쳐져
“집에만 붙어 있는 사람”, “바깥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뜻을 만든다.

* gehe + aalag → 게으르다 (집에 매달려 있음)
* gehe-mehin = making water at home → 게으른 사람

즉, ‘게으르다’는 단순히 태만을 뜻하는 말이 아니라
안식의 공간에 머무는 인간의 심리,
‘움직이지 않으려는 마음’을 풍자한 언어철학의 표현이다.

 

5. 우리말과 범어의 역사적 상관성

훈민정음 이전에도 우리 조상들은
고대 인도-이란계 언어와 음운적 친연성을 지니고 있었다.
그 흔적이 바로 게헤, 마히시, 애마리요, 마다 등에서 드러난다.

특히 남도 방언 속에는
범어의 음운 구조가 거의 변형 없이 남아 있으며,
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동이족 언어와 범어의 공동 기원을 시사한다.

 

6. 말은 기억이다 ― 언어는 철학이다

‘게헤’, ‘게으르다’, ‘계집’, '개미'…
이 모든 말은 우리말이 고립된 언어가 아니라,
인류의 오래된 언어적 원형과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말은 단순한 소리가 아니라,
수천 년간 이어온 삶의 철학과 인간관계의 기억이다.

‘게헤 있느냐’라는 말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삶의 터전과 인간의 관계를 존중하는 철학의 언어였다.
‘게하(집)’는 몸과 영혼의 집이자 공동체의 상징이었으며,
그로부터 ‘계집’과 ‘개미’, ‘게으르다’가 파생된 것은
우리말이 단순한 소리가 아닌
삶의 방식, 문화의 기억임을 보여준다.

오늘 우리가 무심코 쓰는 한 단어 속에도
수천 년의 문화와 언어의 발자취가 살아 있다.

 

따라서 ‘게헤 있느냐’는 말은
“그대의 삶은 안녕한가?”, “그대의 몸은 평안한가?”라는
인간적인 따뜻함과 영혼의 안부를 함께 전하는 말이었다.
그 한마디는,
인류 언어의 기원과 우리 조상들의 사유가 맞닿은
살아 있는 문화의 유물이다.

 핵심 정리

우리말범어의미어원 관계
게헤 (게하) geha 집, 거주, 몸, 가족 동일 어원
게햐 gehya 집안의, 가정의 형용사 변화
게아미 → 개미 geha + ama, (微) 집을 짓고 사는 작은 존재 복합어
계집 geha + jiv 집에 있는 사람, 부인 합성어
게으르다 gehe + aalag 집에 붙어 있는 사람 합성어

7. 결론 

우리말의 뿌리는 단지 한반도의 언어사가 아니라,
인류 문명의 심층부와 맞닿아 있다.
‘게헤 있느냐’는 말 한마디 속에,
집과 가족, 공동체와 인간의 존엄을 담은
우리말의 철학과 역사가 고스란히 살아 있다.

 

우리말 범어사전 32쪽

 

우리말 범어사전 32쪽